이 책을 읽기 전, 소설의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 그래서 가족, 가까운 지인, 연인 등 소중한 인연이 나타나면 확인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것. 그런 예민하고 다루기 힘든 주제를 제목으로 한 소설이란 과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도대체 어떤 자신감이길래, 소설 이름을 당당히 마음으로 잡았을까.
생각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간악함이란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 - 말 할 것도 없이 '마음'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내가 정의내리고 싶은 마음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하고 싶다. 여기 마음을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주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1. 비가시성: 사실상 마음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속성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절대 볼 수 없다. 마음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같은 다른 신호를 통해. 여기서 마음의 강력함이 나온다. 특히 철저히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앞서 말했듯 마음은 볼 수 없으니 우리는 그 사람의 제스처를 통해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철저히 잘 숨기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절대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본다.
2. 변용성: 사람은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동물이다. 좋은데 싫은 척, 혹은 다소 꺼려지지만 반가운 척 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 비가시성과 결합되면 매우 강력해진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 없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은 이제 이론상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본다.
3. 보편성: 위에서 설명한 마음을 모든 사람은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선의로든 악의로든, 그것을 능숙하게든 서툴게든 간에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사람을 간악한 동물로 만드는 가장 크리티컬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나는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마음을 먹기만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상관은 없는 것 아닐까?
여기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주제가 나온다.
이 소설의 주된 인물은 2명이다. 화자인 '나'와 나를 상대하는 '선생님' 이라는 인물이다. 소설의 전개는 주로 두 인물 간의 교류를 위주로 진행된다. 그 외에는 선생님과 결혼한 사모님이라는 상대가 있고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나'에게는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마음은 어떻게 먹든 상관이 없다. 그렇다... 동네 공원에서 한가로이 장기를 두는 어느 돈 많은 노인을 보며 그를 살해한 뒤 그가 가진 재산을 탈취하려는 생각을 하든, 매력적인 이성을 보고 속으로 해선 안될 생각을 하든, 어느 회사 옥상 끝에서 뒤돌아서서 담배를 피고 있는 악독한 직장 상사의 등 뒤에서 그를 밀어버리려는 생각을 하든 뭘 하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는다면, 그저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은 무섭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 더 나아가 가면도 쓸 수 있는 마음. 우리는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없기에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이란 때로는 두렵기만 하다.
이러한 깨달음을 알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등장 인물의 진짜 마음이라는, 그 잔혹성이 내포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으며 동시에 어쩌면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행동의 주체가 내가 되었든, 혹은 그 행동의 대상이 내가 되었든간에 말이다. 동시에 또 한 가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난 일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꼭 진실을 알아야겠냐고. 굳이 그 사람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그 진의를 꼭 알아야겠냐고 말이다. 물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세상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진실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는 용기를 내어 마주쳐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예를 들면 20년 동안 뒷바라지 하여 키운 아들딸들이 성인이 되어 어느날 스스로 자립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으니 더는 경제적인 지원도, 그 어떤 간섭도 바라지 않는다는 경우. 혹은 반대로 20년 동안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이 어느날 사실은 전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었으며, 그저 의무감만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왔기에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더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경우. 이러한 경우들은 물론 당사자들에겐 너무나도 잔혹하겠지만, 당장에 현실이기에 마주쳐야 할 수 밖에 없는 진실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런 잔혹한 사실들을 계속 마주쳐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그것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동시에 내게는 사람을 보는 관점을 하나 더 알려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관점이란 눈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의 마음이 진정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님을,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 어떤 잔혹한 마음을 내포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비하자.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들이 닥쳐도 쉽게 상처받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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