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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일본내 한류 열풍. 현 상황에 대한 고찰(1): 일본내 한류의 역사 1편

by KDH Blog 2018.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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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력주의 입니다. 이번에는 일본내의 한류 열풍에 관한 소식으로 찾아뵙습니다.


예전부터 일본은 한류 열풍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기세가 삐걱대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는데요. 과연 현재 일본 내의 한류는 위기인건지, 아니면 어떤 상황인건지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일본내의 한류에 대한 간략한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차 한류의 시작은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외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주역에는 '겨울연가'를 필두로 한 일본내에서의 '욘사마'의 인기로 대변되었지요. 물론 그 전부터 클론이나 쿨 등의 90년대 가수들의 노래가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해외 진출의 거의 첫 사례가 되겠지만, 본격적인 한류 바람의 시작이 '겨울연가' 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겨울연가' 등의 드라마로 인한 열풍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방영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그 열기도 식을 테니까요. 당장 전 지구적인 인기를 끌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당시에는 그 기세가 너무 거세서 오랜기간 유지될 줄 알았는데 금방 식어버린 것 처럼 말이죠. 마찬가지로 그렇게 점점 식어버릴 줄 알았던 일본내에서의 한류 바람을 다시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K-POP 입니다.


일본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보아


1. 2000년대 초~중반, 보아의 일본 진출 활로 개척

시작은 보아였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조용필, 나훈아 등의 굵직한 한국 가수들이 일본의 대표적인 노래방송인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하는 등의 어느 정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일본 진출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보아였죠. 이 보아의 인기가 어느정도냐면, 일본 활동을 그만둔지 10년이 넘은 아직까지도 그녀의 이름이 일본사람들의 입에 간간히 오르내리고, 동시에 누군지 이름 정도는 알며, 심지어 그녀가 일본에 출시한 크리스마스 시즌송은 매 크리스마스 마다 일본의 거리에 울려퍼지고 차트를 역주행한다고 합니다. 마치 벚꽃 철 마다 벚꽃엔딩이 차트를 역주행하듯 말이죠.


그 흐름은 이어서 동방신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2. 2000년대 중후반, 동방신기


일본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구) 동방신기 멤버들


2000년대 중후반의 일본 한류는, 단언컨대 동방신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당시 저는 동방신기의 현지 인기를 인터넷으로 직접 접했었는데요. 5명의 동방신기가 활동 중지를 선언하기 직전이 될 때 즈음(2009년 초중반)에는 인기가 폭발적이었습니다. 저는 다 기억하거든요ㅎㅎ. 당시 중학교 2학년일 때,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물론 얼굴은... 아닙니다만...) 일본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어가는 그 모습이 되게 뿌듯해서 막 그들이 나온 일본 방송은 다 챙겨보고 그랬을 정도였습니다. 그정도로, 남자였지만 되게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룹을 해체한다고 들었을 때는 되게 아쉬웠지만... 네 애기가 다른 곳으로 셌네요. 여튼 매우 많은 인기를 얻으며 한류 열풍을 다시 이끌던 그들이었는데요. 그 인기는 식지않고 이어져 2인 체제의 현 동방신기가 되어서도 매해 최소 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인기스타가 되어있습니다.


3. 2010~2011: 2차 한류 열풍의 시작

그 열풍을 타고 2010~2011년이 되면,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다 싶은 가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으로 진출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인기 그룹들, 뭐 생각나는 그룹들만 일단 써보자면 소녀시대, 카라, 샤이니, 장근석, FT 아일랜드, 티아라, 2PM, 2AM, 아이유, 빅뱅, 애프터스쿨... 진짜로 다 갔었죠. 심지어는 트로트 가수 박현빈도 갔을 정도니... 그만큼 K-POP 열풍이 대단했고, 수요가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 진출이 절정에 달했던 2011년의 경우, 저 같은 경우는 심심해서 오리콘차트에 들어가보면 무조건 10위안에 한국 아티스트가 하나는 있었고, 1위도 간간히 보이고, 또 심심하면 네이버 검색어에는 누구누구 오리콘 차트 진입 같은 검색어가 떴고, 기사들도 심심하면 어느 아티스트가 몇 위를 차지했느니, 뭐 누가 오리콘 데일리/위클리 차트 1위를 기록했느니 어쨌느니 하는 소식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2011년 일본 음악 시장의 10%를 K-POP 가수들이 차지할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죠. 지금 현재(2018년) 트와이스와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3차 한류가 다시 시작되었다고들 하지만, 제 기억에 일본 한류의 최전성기는 단언컨데 이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악시장이 매우 큰 일본에서 10%나 차지한다는 것은, 정말 일본 진출이 흥했던 이때가 아니면 다시 나오기는 힘든 기록일 겁니다.


일본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빅뱅


그러나 이 수많은 그룹들 중,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그룹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동방신기를 덕질하던 열정만큼이나 다른 그룹들 상황도 열심히 지켜봤었는데요. 객관적으로도 그렇고 제 주관적인 체감으로 봐도 그렇지만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그룹들을 말하자면 동방신기, 빅뱅, 카라, 소녀시대, 장근석, FT아일랜드(특히 이홍기의 인기는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성공이 장근석과 더불어 한몫 했었고, 실제로 의미있는 수준의 앨범 판매량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돔투어로 이어졌던 샤이니, 2PM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머지 뭐 티아라니 애프터스쿨이니 박현빈이니 뭐니 하는 가수들은... 대부분 오리콘 차트를 진입하는 정도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2년, 큰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4. 2012년, 암흑기의 시작

바로 2012년 8월 14일 입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일본 천황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게 되는데요. 당시 그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던 상황이라,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에서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걸로 인해... 정말 급속도로 한류가 냉각됩니다. 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냐면, 그 전까지 이어지던 많은 아티스트들의 일본 진출 러시가 한 순간에 끝나버릴 정도였습니다. 2011년, 그리고 2012년 초까지 꾸준히 들려오던 '누구누구 일본 진출 소식' 같은 기사들이. 정말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정도였죠. 심지어 그나마 오리콘 차트 진입이라도 하게 해주던 어느정도의 수요마저 죽어버리고 말이죠. 진짜 제가 봐도 너무 크게 실감이 될 정도로 한 순간에 팍 식어버렸습니다. 심지어 2011년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도쿄의 한인타운 '신오쿠보' 라는 지역은 단 1년만에 가게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게 되었구요.


이렇듯 많은 상황들이, 그리고 많은 지표가 2차 한류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지만,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근근히 이어져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2011년, 한창 절정이던 2차 한류 당시 어느정도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던,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한 아티스트들에 의해서 말이죠.


5. 2012년 후반~2016년 초, 5년간의 암흑기. 그리고 동방신기 vs 빅뱅 vs 소녀시대 삼국지.


이 부분부터는 다음 포스팅인 일본내 한류의 역사 2편 포스팅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많이들 기대해주시길 바라면서, 읽어주신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시사 읽어주는 남자 김동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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